<스포일러가 한가득 있습니다. 연람에 주의 바랍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영화 <도리화가>는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명창 진채선과 그의 스스로 신재효의 사랑이야기가 주된 맥락을 이루는 영화입니다. 학창시절 음악 시간에 한국의 음악사 파트에서 들어본 기억이 나는 인물인 신재효는, 조선말 판소리 연구가로서 조선의 판소리를 집대성한 인물로 한국인의 뇌리에 남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는 구전으로만 전해오던 판소리를 텍스트로 정리한 인물입니다. 그가 정리한 판소리가 심청가, 흥부가, 춘향가, 수궁가, 적벽가, 변강쇠가의 판소리 여섯 마당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판소리를 집대성한 것뿐만 아니라, 소리에 쓰일 만한 극본도 만들었습니다. 그가 집필한 소리의 대본 중 하나가 바로 “도리화가”입니다. 그리고 영화는 이들이 살았던 시대와, 그 시대의 최고 권력자인 흥선대원군 또한 보여줍니다. 실제로 진채선과 신재효 그리고 흥선대원군은 서로의 운명에 강하게 얽혀 있습니다.
희대의 삼각관계
진채선은 남장을 하고 소리를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녀의 모친은 무당이었고, 어릴 때부터 소리를 잘해 주변에서 그녀에게 소리를 청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진채선은 기적에 올라 기생의 신분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진채선의 소리를 듣게 된 신재효는 자신의 소리꾼 후원 시설인 “동리정사”에 그녀를 데리고 옵니다. 사실 신재효는 유럽의 매디치 가문에서 했던 예술인 후원을 하던 돈 많은 중인이었습니다. 그래서 진채선의 소리를 사기 위해 그녀를 기적에서 빼온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소리꾼 후원 시설인 “동리정사”에는 그녀를 비롯해서 수 십명의 기녀들이 소리를 배우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진채선이 압도적인 실력을 갖고 있었다고 합니다. 17세의 진채선이 소리를 배우고, 익혀 어느덧 21살이 되던 해에 진채선은 경복궁 중건을 기념하는 “낙성연”이라는 연회에 참가하게 되고, 거기서 자신의 소리를 마음껏 뽐내게 됩니다. 그때 진채선의 소리와 그녀에게 홀딱 반해버린 흥선대원군은 진채선을 자신의 대령기생으로 만들어 운현궁에 가둬버립니다.
외출도 금지당한 채 오직 흥선대원군만을 위해 소리를 해야 하는 신분으로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진채선의 소리에 감복한 흥선대원군은 진채선에게 후원자 신재효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그에게 명예직을 주어 한양에 머물게 하지만 신재효는 4개월을 채우지 못하고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3년 후, 그는 불현 듯 깨닫습니다. 자신의 제자, 진채선에대한 사랑을 말입니다. 그래서 그는 “도리화가”라는 곡을 짓습니다. 여기서 나오는 붉고 아름다운 꽃 도(挑)는 진채선, 그리고 희고 담담한 꽃 리(李)는 바로 신재효 자신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즉 진채선을 생각하는 신재효의 노래를 지은 것입니다. 이 곡을 듣게 된 진채선은 “추풍감별곡”이라는 곡으로 후원자였던 신재효에대한 자신의 마음을 고백합니다. 흥선대원군은 진채선의 마음을 얻으려 많은 노력을 했다고 전해집니다. 하지만 “날아가는 새는 절대로 뒤를 돌아보지 않는 법이다.”라는 말로, 자신에게서 떠난 진채선의 마음을 자신이 돌릴 수 없다는 말도 남겼다고 합니다. 그렇게 또 다시 3년이 지나고, 흥선대원군은 고종의 친정으로 실각하고 양주로 떠났고, 진채선에 대한 기록은 더 이상 전해지지 않습니다. 어떻습니까? 엄청난 삼각관계 아닌가요? 하지만 진채선(1842년생), 흥선대원군(1821년생), 신재효(1812년생)인 나이 차이를 고려하면 딸이나 손녀 뻘 되는 어린 여자 하나두고 어르신들이 뭐하신 것인가 싶은 생각도 살짝 듭니다. 물론 사랑에 나이도, 신분도 없다고 하고, 당시 시대가 갖고 있는 특색이 있으니, 많은 나이 차이도 순수한 사랑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영화, 무엇을 말하고 싶은가?
영화를 보는 내내 집중이 어려웠던 이유가 무엇인가 고민을 좀 해봤습니다. 아무래도 판소리와 관련된 사건과 인물이 등장하니, 판소리에 대한 몰입이 부재했던 것에 문제가 있지 않나 생각을 해봅니다. 한국의 고유 무형문화제인 판소리는 독특한 음색으로 청중의 심금을 울리는 매력이 큰 장르입니다. 그런데 영화 내에서 그런 엄청난 깊이를 가진 소리를 관객은 듣지 못했습니다. 판소리가 1,2년 한다고 득음의 경지에 이를 수 없는 장르이기도 하고, 배우들의 성대에 영구적인 소리 변화를 가져올 판소리를 시킬 수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그래서 배우들이 직접 본인의 목소리로 판소리를 합니다.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을지 보는 내내 애처로워보였습니다. 특히 영화의 하이라이트인 낙성연 대목에서는 대부분의 배우 분들이 목이 쉬어 아프게 들리기도 했습니다. 이럴 때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를 생각해 봅니다. 가수의 목소리를 똑같이 따라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영화의 몰입을 위해서 노래를 부르는 장면에서는 프레디 머큐리의 목소리와 그의 모창가수의 목소리, 배우의 목소리를 섞었다고 들었습니다. 사실 우리 중 누구도 극중 배우들에게 목소리를 상하게 해서 제대로 된 명창 소리를 바라지 않을 것입니다. 판소리가 매인인 영화인만큼 훌륭한 우리 소리를 제대로 들려주었으면 어떠했을까 생각해봅니다. 하지만 영화의 주인공은 사실 소리가 아닙니다. 영화의 주인공은 세 인물의 삼각관계도 사실 아닙니다. 진짜 주인공은 “도리화가”라는 노래 자체입니다. 도리화가라는 노래는 소리를 하지 못하고 갇혀있던 제자 진채선에게 신재효가 보내는 러브레터입니다. 즉, 뒤늦게 신재효의 마음속에도 진채선이 있었다는 것을 알리는 스승의 뒤늦은 사랑 고백인 것입니다. 그래서 영화는 바쁩니다. 여자가 소리를 하는 것의 위험성도 알려야겠고, 세 인물에 대해 소개도 해야겠고, 로맨스도 표현 해야겠고, 판소리라는 것을 설명도 해야겠고…. 소설에는 쉽게 담겼던 것들이 영상으로 풀어내려니 관객은 영화를 보며 각자의 장르에 영화를 끼워 맞춰 봐야 하는 문제가 생깁니다. 사실 도리화가라는 노래의 뜻을 알고 영화를 봤다면 스승과 제자의 사랑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영화의 서술에 납득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러기엔 최초의 여성 명창에 대한 무게가 너무 컸습니다. 최초의 여성명창이라는 말이 주는 어감은 제도와 사회적인 억압에 대해 저항하고, 마침내 고지를 획득한 잔다르크 같은 멋진 여성상이 있기 때문입니다. 관객의 기대가 현실과 다른 여성영웅 서사에 맞춰져 있어서 영화는 더욱 난해하게 느껴집니다.
진채선, 그녀의 삶이 남긴 것
진채선은 날 때부터 소리를 좋아했고, 잘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17살에 신재효를 만나 본격적으로 소리를 배웠습니다. 그리고 21살, 대원군의 대령기생이 된 이후로 그녀의 소리는 사실상 끝이 났습니다. 이렇게 보면 진채선이 제대로 소리를 한 것은 고작 4년 정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실 그녀 이전에도 창이나 노래를 하는 여성은 있었습니다. 어디에? 기방에. 하지만 기생이 하는 노래는 대중이 듣는 게 아니라 아주 소수의 사람만이 들을 수 있는, 특정 계층의 전유물 이었습니다. 하지만 판소리는 다릅니다. 판소리는 한국식 뮤지컬입니다. 즉 엄청난 대중과 함께 공유하는 무대 예술인 것입니다. 진채선의 판소리인생은 짧았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존재로 인해, 이제 여자도 대중 앞에서 노래 할 수 있는 존재로 사람들에게 인식되어 갔습니다. 어쩌면 그렇게 그녀가 열어놓은 문으로 노래하는 창가 가수나, 요즘 방영 중인 드라마 <정년이>와 같은 국극처럼 대중 앞에서 노래하는 여성들이 이어져 내려 올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