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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들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2023), 감독님! 질문은 살살!

by 아일야블로그 2024. 1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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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와 잡담이 가득합니다. 연람에 참고 바랍니다.>

 

 

 

제목에 다 있다.

영화 <그대들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은 일본의 애니메이션 명가 지브리 스튜디오에서 공개한 장편 애니메이션입니다. 원제는 たちはどうきるか로 너희들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의미에 더 가깝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제목에서 주는 무게감이 기존의 지브리 스튜디오에서 공개한 애니메이션들과는 사뭇 다르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본 제목은 동명의 소설에서 제목과 주제를 따온 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동명 소설의 내용을 애니메이션 화 한 것은 아니라고 하니, 혹시 동명 소설을 보실 기회가 있다면 연람에 참고 바랍니다. 영화 <그대들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는 보신 분들에 따라서 재밌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하는 평가가 나뉘는 작품입니다. 그리고 영화 <그대들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2023, 2024년을 통틀어 많은 상을 수상한 작품입니다. 그러니, 이해의 맥락을 찾으면 재밌게 영화를 보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미야자키 감독님은 마히토일지도?

제목을 미야자키 감독님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라고 생각하시면 이해가 좀 더 쉬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영화의 시작은 전쟁이 한창인 일본입니다. 공습으로 어머니가 입원해 있던 병원에 불이 나고, 주인공 마히토(진실한 사람)는 엄마의 병원까지 달려갑니다. 그런데, 당장 불타고 있는 병원을 보고도 마히토는 당장 뛰어가지 않고, 옷을 갖춰 입고, 까까머리 위에 모자까지 쓰고 병원으로 뛰어갑니다. 그리고 영화는 2년 후, 일본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아버지는 엄마의 여동생과 새 살림을 차리게 되고, 마히토는 이모를 새엄마로 맞이하게 됩니다. 그렇게 마히토는 아버지를 따라 엄마의 본가가 있는 시골로 향합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이상한 왜가리를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환상과 현실을 오가는 기이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1941년 일본의 제국주의가 한창일 때 태어난 미야자키 감독님은 전쟁이 휩쓸고 간 일본을 보며 자라났습니다. 하지만 그의 어머니는 일찍 세상을 등지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오랜 병으로 감독님의 어린 시절을 충분히 감싸 안지 못했다고 합니다. 영화 <그대들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의 개봉과 함께 화두에 올랐던 인물은 단연 마히토의 아버지였습니다. 영화에서 마히토의 아버지는 비행기를 만드는 공장에서 높은 직급을 가진 사람이고, 전학 간 시골 학교에서 마히토의 기를 살려준다는 명목으로 자동차를 타고 학교 등교를 시킵니다. 그리고 마히토가 다쳐서 오게 되자 학교에 당시로서는 거액의 돈을 기부하며, 자신의 아들이 편하게 학교를 다니지 않아도 되게 조치를 취해줍니다. 실재로 미하자키 하야오 감독의 집안은 '미야자키 항공흥학제작소라는 군용 부품을 제작한 공장이었고, 다른 나라를 공격하는 무기를 만들던 곳이었습니다. 그로인해 미하자키 감독은 부족함 없는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합니다. 그리고 도쿄공습이 한창일 때, 시골에서 학교를 다닌 경험도 있다고 합니다. 즉 영화에 나오는 진실한 사람이라는 뜻의 마히토는 작가의 어린 시절을 투영한 인물로 비칩니다..

 

탑 속의 세계는, 작가의 삶 + 창작자로서의 삶?

마히토는 파란 왜가리에게 이끌려 탑 속의 세계로 들어갑니다. 그 탑은 증조부에 의해 만들어진 탑인데, 증조부는 탑 속에 들어간 이후로 생사를 확인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왜 굳이 증조부의 세대에 만들어진 탑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일까 고민이 됩니다. 마히토는 만나지 못했지만 마히토의 집안의 부를 이끌어온 세대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미야자키 감독님의 경우로 생각해 보자면, 조부 때부터 시작했다고 알려진 미야자키 항공흥학제 작소의 토대가 된 자본을 축적한 분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마히토의 증조부는 내일이라도 당장 무너질 것 같은 세계를 지은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 속에서 사람 말을 하는 새, 앵무새의 군대와 함께 자신이 만든 세상을 지탱하고 있었습니다. 마히토의 증조부가 만든 세상은 결국 군부에게 점령당하다시피 했고, 증조부는 더 이상 자신이 유지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자신의 피를 이은 마히토가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주길 바란다는 말을 합니다. 하지만 마히토는 이것을 거절하고, 앵무새 장군에 의해 증조부가 만든 세상도 무너지게 됩니다. 사실 사람 말을 하는 앵무새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생각이 듭니다. 사람 말을 하지만 어차피 새대가리, 하지만 무리로 몰려다니며 힘을 휘두르는 군부의 세력. 어쩌면 이 또한 미야자키 감독이 생각하는 자신의 토대와, 자신과 함께 했던 세상을 뜻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기괴한 노인들은 누구?

마히토가 이모의 집에 갔을 때, 그곳엔 양노원에 들어가도 왕언니 소리를 들을 할머니들이 일곱 명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한 마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헌신적으로 마히토를 도왔고, 그 중 하나는 마히토와 함께 탑의 세계로 들어가, 곤경에 빠진 마히토를 구해주기도 합니다. 비록 마히토를 전혀 모르는 인물로 등장하지만 그녀는 운명의 수레바퀴 무늬의 옷을 입고, 마히토를 도와줍니다. 그리고 마히토도 그녀가 누구인지 단방에 알아봅니다. 분명 다른 세상인데, 서로 다른 나이로, 서로 다른 모습으로 한 공간에 존재하고 있는 모습. 이렇게 봤을 때, 탑 속의 증조할아버지는 어쩌면 한 세상 열심히 창작자로서의 투쟁을 해 현재의 미야자키 감독이고, 어린 마히토는 새로운 세계의 어린 사람을 나타내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어린 마히토가 잠을 잘 때, 자신이 머물던 집에서 만났던 노파들의 작은 인형을 그의 주변에 둘러놓고, 그것들을 부적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실제로 지브리스튜디오를 거쳐 가며, 미야자키 감독이 꿈을 그려나가는 것을 도와주었던 그의 동료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창작의 세계에서 고난을 받고,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새로운 세상으로 태어날 작품을 만들어내고, 또 상처받고, 또 이겨내는 과정을 함께 견뎌준 정말 부적 같은 존재를 그려낸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영어 제목은 소년과 왜가리던데?

영화 <그대들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의 영어 제목은 The Boy and the Heron입니다. 그래서 소년인 마히토와 왜가리인 아오사기의 모험과 관련된 영화로 영미권에 소개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마히토와 아오사기와의 관계가 희한합니다. 아오사기는 사기꾼입니다. 죽은 엄마가 살아 있다고 말하고, 또 아버지의 목소리와 같은 목소리(키무라 타쿠야의 목소리)를 갖고 있습니다. 증조할아버지의 명으로 소년의 이모를 찾기 위해 함께 탑 속의 세계에 들어가기도 하고, 마히토의에 의해 상처 입고,, 또 마히토에 의해 치료를 받습니다. 상처는 반드시 상처를 입힌 사람에 의해 치료받을 수 있다고 말하면서 말입니다. 마히토와 아오사기는 서로의 위기를 구해가며 모험을 완수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소년과 왜가리의 모험이라는 제목도 일리가 있어 보입니다. 왜가리라는 소재 자체의 상징성은 한국과 일본이 다른 관계로 정확히 정의하지는 못하지만 작품 내에서는 삶과 죽음의 공간을 나누는 존재, 환상의 세계로 이끄는 존재로 보여 집니다.

 

 

지브리 작품을 회고하다

영화 <그대들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보면 <이웃집 토토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벼랑 위의 포뇨>, <하울의 움직이는 성>, <마루 밑 아리에티> 등의 작품이 생각납니다. 각 작품에서 보여졌던 구조, 캐릭터를 그리는 방법, 색채의 사용 등, 지브리를 스쳐갔던 많은 작품들의 모습이 진하게 느껴지는 작품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자칫 이런 것들을 작품을 섞은 잡탕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자신의 인생이라고 불리는 자신의 작품들을 영화 <그대들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로 집대성하고 회고한다고 생각하면, 강한 전율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거장은 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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