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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의 셰프, 색다를 것 없는 색다름

by 아일야블로그 2024. 6.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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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꽁 얼어붙은 남극 위로 따뜻한 미소시루가!

 

실제로 일본의 남극 연구 기지에서 조리 담당으로 근무했던 요리사의 사연이 일본 방송을 탔습니다. 그는 한정적인 식재료로 다양한 요리를 만들어내는 모습은 일본 주부들의 마음을 쏙 빼앗아 갔고, 한 영화인의 마음 또한 앗아갔다고 합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영화가 바로 남극의 요리인(셰프)라고 합니다.

 

일 년 평균 기온이 영하54도인 남극. 극한의 낮은 온도로 펭귄도, 바다표범도 심지어 바이러스조차도 생존하지 않는 곳입니다. 이러한 곳에 문명의 이기, 과학의 힘으로 생존의 여건을 만들어 각국의 학자들은 모여듭니다. 우리 대한민국도 남극 세종기지를 운영 중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남극의 셰프>를 보면서 우리의 세종기지 내부의 모습도 저와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문만 열고 나가면 수증기도, 펄펄 끊는 물도 순식간에 얼어버리는 남극. 그곳에서 대원들의 식사(=건강)을 책임지는 요리사의 모습에 왠지 모를 감동을 느낍니다. <남극의 셰프>의 주인공인 니시무라는 1년 반 동안 8명의 식사를 책임지는 자위대 소속 요리사입니다. 처음 남극에 모여들 때, 그들은 모두 서로에 대한 관심 따위 없는, 말 그대로 관계성이 꽁꽁 얼어붙어 있는 상태였습니다. 각자 학문에 꿈이 있어서, 혹은 호기심에, 혹은 좌천으로 남극에 오게 된 이들, 어쨌든 남극에 모여 있다는 공통점 말고는 없는 사람들임에는 틀림없었습니다. 그런 그들이 유일하게 한 곳에 모이는 때가 바로 니시무라가 준비한 식사를 먹는 시간입니다. 꽁꽁 얼어붙은 그들의 관계성에 따뜻한 미소시루(일본식 된장국)가 구수하게 풀어지는 순간입니다.

 

 

아는 맛의 무서움

영화는 아주 심심합니다. 엄청난 감정적 위기도, 남극에 고립된 위기, 보급이 끊기는 상황, 실종자의 발생, 남극 지하에서 끌어올린 얼음 결정체에서 알 수 없는 바이러스가 나타난다거나 하는 의외의 상황 따윈 전혀 없습니다. 하지만 재밌습니다. 아주 소소하게, 뭉근하게 끓어낸 계란죽 같은 느낌의 영화입니다. 저는 이 영화를 심심할 때마다 돌려봐서, 열 번을 봤는지, 수무 번을 봤는지 모릅니다. 부담 없이 나의 빈 시간을 채워주는 늘 먹던 간식 같은 영화입니다. 역시 아는 맛이 무섭다고, <남극의 셰프>는 그런 매력이 있는 영화입니다. 영화의 장르를 굳이 이야기 하자면 요리가 메인인 휴먼드라마 장르의 영화라고 볼 수 있습니다. 각기 다른 환경과 동기를 가진 8명의 대원들이 남극에 모였습니다. 남극을 연구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은 남극에 대한 환상과 동경, 사랑이 있습니다. 그리고 어쩌다보니 남극에 온 사람들은 자신이 왜 이곳에 왔는지, 자신이 혼란스러워하며 괴로워합니다. 극중 주인공인 니시무라도 그런 인물 중 하나입니다. 자위대 소속 요리사였던 니시무라는 그저 같은 부대 소속 요리사가 남극을 동경하는 모습을 지켜봐왔습니다. 그는 남극에 갖고 갈 화소가 높은 카메라를 사며, 남극의 조리장으로 갈 것을 꿈꿔왔습니다. 그리고 그의 소원은 이루어졌습니다. 니시무라는 그가 남극 발령을 받자 옆에서 박수를 쳐주며, 그가 꿈을 이룬 순간을 그럭저럭 축하해 줍니다. 하지만 니시무라의 동료는 오토바이 사고를 겪게 되고, 남극에 갈수 없게 됩니다. 그래서 같은 부대에 있던 니시무라가 남극에 떠밀려 갑니다. 사랑하는 아들 딸, 그리고 아내를 집에 남겨두고 그렇게 홀로 남극에 가게 됩니다. 니시무라는 요리를 하지 않는 시간에는 좁은 방에 홀로 누워서 자신이 남극에 오게 된 이유를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우울에 빠지거나 자신의 일을 게을리 하지 않습니다. 그는 변화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을 수 없는 남극에서의 유일한 변화였고, 유일한 화합의 통로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일을 다양하게 열심히 합니다. 기지 내에서 식물을 재배하고, 발화점이 낮은 불을 이용해서 스테이크를 굽고, 튀김을 만들고, 심지어 손수 라면을 만듭니다. 처음엔 남극에 음식을 먹으러 온 게 아니라, 일하러 온 것이라고 말하던 사람들도 니시무라가 만든 식사를 기대하고, 기다립니다. 그가 만든 밥상 앞에선 언제나 어린 아이 같은 모습을 보이게 됩니다. 한 식탁에서 밥을 먹으면 식구라고 했던가요. 그들은 이미 서로의 희로애락을 함께하는 가족이 된 것입니다.

 

 

 일본 음식 영화 특유의 치유(힐링)

일본엔 음식을 주요 소재인 영화가 꽤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리메이크 된 <리틀 포레스트>, 한국에서도 골수 펜이 많았던 <카모메 식당>, <탐뽀뽀>, <우동>, <양과자점 코안도르>, <심야식당1,2>, <스키야키>, <행복의 향기>, <해피해피브레드>, <우리가족 라멘샵> 등 음식이나 요리가 등장하는 영화가 이미 한국인에게도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 영화는 경쟁을 주요 주제로 삼고 있지 않습니다. 각자 음식으로 받는 치유나 인간적인 성장이 포인트들인 영화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 삼삼한 영화들에 계속 손이 가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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