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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최면술사, 쪽쪽 몰입을 빨아가는 영화

by 아일야블로그 2024. 6.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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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면으로 이게 가능해?

영화를 보는 내내 눈을 뗄 수 없었습니다. 진정한 대 최면가는 영화 속 캐릭터가 아니라, 이 영화를 만들어낸 감독님이 아닌가 합니다. 영화에 얼굴이 쏠릴 정도로 집중해서 봤던 기억이 나는 영화였습니다. 최면요법으로 트라우마 환자들을 치료하는 정신과 의사 쉬루이닝은 어느 날 스승님의 부탁으로 자신이 귀신을 본다고 말하는 환자, 렌샤오옌의 치료를 맡게 됩니다. 하지만 렌샤오옌을 처음 만나는 순간부터 쉬루이닝은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일반 환자들과 달랐고, 자신은 확실히 귀신을 본다고 과거에 겪었던 일을 말해줍니다. 하지만 쉬루이닝은 그녀가 입양의 상처로 정신에 문제가 있다고 말하고, 귀신을 보는게 아니라고 단언합니다. 자신감 만만한 정신과 의사 쉬루이닝은 자신의 치료에 도전하듯 다가오는 렌샤오옌이 너무 신경 쓰입니다. 그리고 그녀를 치료하던 도중 자신이 렌샤오옌의 심리 내면으로 함께 소환되는 기분을 느끼게 됩니다. 사실 쉬루이닝도 가끔 알 듯 모를 듯한 표정을 보이곤 하는데, 그 점이 이 영화를 좀 더 몰입하게 하는 것 같다고 생각 들었습니다. 영화의 초반부는 렌샤오옌이 보는 귀신의 모습에 초점이 맞춰져, 살짝 호러무비의 모습을 보입니다. 쉬루이닝은 귀신을 보는 것 자체보다, 어째서 그 귀신이 당신에게 보이는지를 거듭 질문합니다. 그것은 반드시 과거의 트라우마에서 오는 흔적이라는 것을 말하는 듯 말입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둘의 위치는 바뀝니다. 그리고 사실 이 모든 과정이 쉬루이닝을 치료하기 위한 스승님이 짠 큰 판이었습니다. 고도로 훈련된 정신과 의사이자 최면가인 쉬루이닝은 정신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사고로 친구와 애인이 함께 탄 자동차가 다리에서 떨어지게 되고, 그 중에서 자신만이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으로 자학을 하는 병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병을 치료하고자 그의 스승은 많은 제자를 쉬루이닝에게 보냈지만 그는 동료들의 시도를 모두 간파하고 자신에게 최면치료를 하는 것을 거부합니다. 그래서 스승은 뛰어난 최면 가 렌샤오옌을 초청합니다. 만약 자신이 쉬루이닝을 치료하러 온 것을 그가 알게 되면 치료에 실패하기 때문에, 렌샤오옌도 자신의 상처를 쉬루이닝에게 드러냅니다. 그리고 쉬루이닝이 건 최면에 깊이 빠지지 않기 위해 자신을 되돌리는 방법 또한 준비하고, 쉬루이닝을 처음 만나는 순간부터 그에게 최면을 건 것입니다. 이 모든 과정이 냉담하게 그려지지만, 사실 서바이벌 전쟁처럼 표현됩니다. 아주 스실넘치고 재미있습니다.

 

중국영화인데, 너무 재밌다

사실 중국은 예전부터 영화를 잘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중국영화의 재미가 심도 깊은 스토리를 중심으로 한 게 아니라, 엄청난 CG력을 어필하는 공간이 되어버렸던 것 같습니다. 뛰어난 감독과 뛰어난 배우가 아주 많은데, 아쉽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대최면술사>를 보고 정말 중국영화가 재밌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세트나 미술적인 부분도 충분히 아름다웠습니다. 포스터도 영화의 내용을 잘 담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마음의 저 아래 감추어진 진짜 찾아내야할 부분, 마음의 상처를 물 밖으로 얼굴을 내민 누군가가  찾아내는 모습을 잘 보여준 것 같습니다. 어쩌면 이 영화의 시작을 알리는 내용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을 병들게 하는 감정, 집착

영화의 장르가 스릴러이고, 영화의 메인 소재가 최면이지만, 사실 영화의 주제는 내면의 치유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할수 있는 사람은 타인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라는 말을 잔잔하게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학식이나, 사회적으로 갖추어진 위치로 이뤄지는 게 아닙니다. 스스로 자신의 상처를 제대로 쳐다볼 수 있는 용기입니다. 극중 렌샤오옌은 자신의 상처에 담담히 맞설 수 있는 용기가 있는 캐릭터로 나옵니다. 자신의 과거를 빌미로 의사로서의 쉬루이닝의 치료하고자 하는 마음을 자극하고, 그가 렌샤오옌에게 빠져들게 만듭니다. 그리고 렌샤오옌은 자신의 상처를 들여다보는 쉬루이닝이 그 자신의 상처를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그는 사실 겁쟁이였습니다. 자신의 상처를 돌아볼 용기가 없었습니다. 사실 상처가 아니라, 죄책감을 이겨낼 용기가 없었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지도 모릅니다. 그의 음주운전으로 죽음을 맞이한 친구와, 임신한 애인. 맨 정신으로 살아가기엔 너무나 감당하기 힘든 죄책감이었던 것입니다. 그 죄책감은 스스로 해결책을 찾아야합니다. 그리고 애초에, 감당하기 힘든 죄를 지으면 안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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