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밀실로, 콘클라베
콘클라베는 교황 선종 한 후, 교황을 뽑기 위한 절차 전체를 이르는 말입니다. 한국에 영화 <콘클라베>가 개봉한 이후 거짓말처럼 교황께서 선종하셔서 적지 않게 놀랐습니다. 가톨릭 신앙과 인연이 없게 살고 있어서 그런지 교황의 건강상태 이전에, 교황이라는 개념 자체가 제겐 너무 먼 존재였으니 말 압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난 후 실제로 콘클라베가 있어지고, 또 새 교황이 선출된 것을 보니, 제가 역사의 한 순간을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이구나 하는 시대감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콘클라베는 라틴어로 cum(함께), clavis(열쇠)가 합성한 말로 cum clavis(쿰클라비), 열쇠로 잠근 밤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즉 콘클라베 자체가 교황 선종후 밀랍으로 봉인된 교황의 방도, 또 교황을 선출하기 위해 모여든 추기경을 가둔 바티칸 시스티나 소성당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들이 밀실로 갇힌 이유는 단 하나, 교황선출. 교황이 선출되면 하얀 여기를, 교황이 선출되지 않으면 검은 연기를 밖으로 내 보내며, 밀실을 유지합니다. 그렇다면 새 교황을 선출하는 밀실에선 과연 어떤 일이 있을까? 이 호기심이 영화의 씨앗이 되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종교스릴러라는 새로운 장르?
영화 <콘클라베>는 2016녀 발간된 로버트 해리스의 동명소설을 영화로 만든 작품입니다. 영화의 시작은 교황의 선종으로 콘클라베의 의장을 맡게 된 로렌스. 교황의 체스 친구나 다름없었던 벨리니 추기경에게 교황은 여덟 수를 앞서가는 체스 실력을 가진 분이었다는 말을 듣습니다. 그리고 이 말은 콘클라베가 시작되며, 그가 앞서본 여덟 수가 무엇인지 로렌스 추기경은 서서히 깨달아가기 시작합니다. 콘클라베가 시작되기 직전 빈센트 베니테스라는 추기경이 바티칸을 찾아옵니다. 그는 교황이 생전에 보낸 임명장을 갖고 있었고, 아프가니스탄 카불에서 대주교로 일하고 있었던 멕시코인 추기경이었습니다. 따지고 보면 그는 기존 추기경들에겐 이방인이나 다름없는 존재였습니다. 그를 아는 이는 이젠 하느님의 곁으로 간 전 교황뿐이었으니까요. 어쨌든 콘클라베가 시작되고 전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추기경들과 다음 교황으로 가톨릭을 이끌어갈 인물을 뽑는 선거가 시작되는데, 선거 시작 전에도, 그리고 선거가 진행되는 과정에도 인간 로렌스의 고뇌는 계속됩니다. 확신이라는 죄에 갇힐까 두려운 로렌스. 다음 교황은 보수냐, 진보냐를 두고 혈전을 벌이게 됩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유력 후보를 떨어뜨리기 위해 계획된 여러 가지 일이 있게 됩니다. 가령 유력한 후보가 30년 전 낳은 사생아(지금은 수녀가 된 사람)를 바티칸에 불러들여 추기경의 부정을 드러내 거나, 그 일을 주도한 사람은 거대 횡령을 했고, 그 사실을 밝히면 이탈리아 파(극보수)가 교황이 되니 그것을 막야 하기에, 횡령사실을 밝힐 수 없다는 의견까지. 로렌스는 자신의 손으로 혹은 이미 이전 교황이 설계를 해 놓은 대로, 교황의 후보들을 하나하나 걸러 갑니다. 그 와중에 로렌스는 자신이 과연 하나님의 뜻대로 일 하고 있는지, 아니면 어덟수를 내다보는 이전 교황의 뜻에 이끌리는지, 그도 아니면 신념에 갇혀 오류를 범하고 있는지 고뇌합니다. 하지만 결국 극보수를 막기 위해 로렌스는 자신의 이름을 써서 투표를 하기까지 이릅니다. 한편 다음 종교세상을 이끌어갈 교황을 선출하기 위해 밀실해 갇힌 추기경들과 달리 세상은 혼란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데모에 테러에. 콘클라베도, 세상도 각자의 전쟁으로 혼란스럽습니다.
그 혼란이 로렌스가 자신의 이름을 적어내는 순간 맞부딪힙니다. 그리고 성당의 천장에 구멍이 뚫리는 일이 생깁니다. 이는 1268년 약 2년 9개월간 잇었던 콘클라베 당시 빠른 교황 선출을 촉구하며 성당 천장에 구멍이 뚫린 사건을 차용해 온 게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그대 천장에 구멍이 뚫렸으니 성령이 들어가 교황 선출을 도울 것이라는 말이 떠돌았다고 하는데, 본 영화에서도 성당 천장에 뚫린 구멍으로 성령, 즉 신의 개입을 형상화한 게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위 사진은 영화의 해당 장면인데, 사얀 먼지가 빛과 함께 투표대에 떨어지는 모습이 신의 개입처럼 보이지 않으신가요? 신의 개입으로 판도는 또 바뀝니다. 그 열쇠는 바로 베니테스 추기경. 추기경의 안력 싸움에, 정치색에 물들지 않고, 본질을 이야기하는 유일한 인물이었습니다. 이번에도 로렌스는 결국 이전 교황이 그를 다음 교황으로 준비해 둔 게 아닌가 생각하게 됩니다. 자시은 그저 그 길을 따라가고 있는 것이라고. 그리고 이전 교황의 설계대로 베니테스는 다음 교황으로 선출됩니다. 그런데 또다시 드러나는 문제. 그건 베니테스 추기경이 간성이 란느 사실. 간성 혹은 인터섹스라는 개념은 한 몸에 두 가지 성별의 징후가 나타나는 것으로, 전형적인 남성, 여성의 개념이 아닌 그 사이의 성을 뜻하는 말입니다. 오직 남자만이 할 수 있는 교황. 그 자리에 간성? 로렌스는 이제 곧 교황이 되어 시민들에게 인사를 할 베니테스를 찾아갑니다. 그리고 간성에 대서 묻습니다. 베니테스는 다른 말보다, 하느님이 자신을 이렇게 만들었다고 말합니다. 로렌스는 그의 말을 듣고 이 모든 게 하느님의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부적절하다고 여겨진 인물들의 비리를 밝혀왔던 로렌스는 조용히 물러나 베니테스가 교황이 되는 것을 지켜봅니다. 종교스릴러라는 새로운 장르로 불리는 영화 <콘클라베>는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이것이 종교계의 이야기라기보다 정치적 상황과도 상당히 닿아 있음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어쩌면 종교스릴러라기보다 정치스릴러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다들 명작이라고 하는데, 졸았다고 하는 사람이 많았다
영화를 본 지인들이 하나같이 입을 모아, 최근 본 영화 중에 최고라는 말을 했습니다. 하지만 앞부분에서 좀 졸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저도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며 그런 느낌을 받았던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내용이 흥미진진한 것과 별개로 졸음이 쏟아지는 기분. 억지로 잠을 참아내며 이 묘한 일이 왜 일어나는 가 주변을 돌아보니, 너무 어두운 게 원인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영화는 극명한 색채대비를 보여줍니다. 그로 인해 어두운 화면은 상당히 어둡게 보였고, 어두운 영화관 속에서 어두운 화면에 외국어를 듣다 보니 졸음이 쏟아진 게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아무래도 서양인 눈동자 기준에는 어두운 분위기로 화면이 보였을지 모르지만 동양인의 눈동자 기준에서 화면은 어두운 분위기 정도가 아니라 정말 어두웠습니다. 모닥불을 피워놓고 책을 읽을 수 있는 눈동자와 다른 눈동자라는 사실을 조금 반영해서, 동양에 넘어오는 필름은 어둡게 연출된 부분만 조금 손을 봐주셨으면 어떨까 싶었습니다. 아니면 제가 당근을 많이 먹었어야 했을까요? 동양인치고 밤에 밝은 눈인데, 영화를 보는 내내 참 어려웠습니다. 아무래도 어두운 장면 직전 나오는 눈이 시릴 정도로 밝은 장면 때문에 눈동자가 힘들었을지도 모릅니다. 영화의 어두운 장면이 너무 어두웠운 것을 제외하면 영화의 미장센은 정말 감탄이 터져 나올 정도로 멋졌습니다. 극명한 적과 백의 대조는 색깔이 갖는 수없이 많은 의미와도 닿아있습니다. 특히 추기경들을 짓누르는 듯한 순결하다 못하 하얗게 질린 백색은 추기경이 짊어지고 사는 청빈한 삶이 아닐까 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입고 있는 옷은 빨갛다 못해 붉게 빛을 내는 것 같다는 착각을 불러 일이킵니다. 붉은색은 땅, 욕망, 피, 열정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영화 내내 아름다운 화면을 잔뜩 봤던 것 같습니다. 장엄하고, 무거운 첼로소리도 영화를 보는 재미였습니다. 기회가 되시면 밝은 장소에서 다시 보고 싶을 정도로 잘 만들어진 영화였습니다.
영화는 영화일 뿐, 실제 콘클라베는 축제 분위기 같았다고
한국에서는 2025년 <콘클라베>가 개봉했지만 미국에서는 2024년에 개봉했다고 합니다. 추기경님들도 이 영화를 많이 보셨다고 합니다. 영화의 숨 막히는 정치 싸움을 본 추기경님들은 실제 콘클라베에 모여서, 영화 다 거짓말이라고 웃으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상당히 유쾌한 분위기로 교황을 선출하셨다고 합니다. 한국에서는 어린 후배에게 짬처리하고 기쁜 추기경들이란 내용으로 관련 사진과 영상이 돌아다니기도 했습니다. 실제 선출은 가장 어려서 장기적으로 막중한 교황의 일을 오랫동안 수행할 수 있는 인물로 선출한 게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신께 독신을 서약하고, 신을 전하는 사명을 감당하시는 분들이 한 선출이니, 신의 뜻도 함께 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