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이 먼저? 닭의 알이 먼저?
정신 줄을 잠깐이라도 놓으면 이야기의 맥락을 놓쳐버릴 수 있는 영화가 바로 이 <타임 패러독스>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언뜻 보기엔 시간 여행과 관련된 SF 영화인 것 같지만 사실은 인터섹슈얼로 인한 사람의 심리를 그려낸 일종의 서스펜스 영화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물론 보는 사람에 따라서 스릴러 영화로도 보일 수 있는 양파 같은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제인이 개명을 해야만 했다.
이야기의 맥락은 이러 합니다. 고아원에서 자란 여자 아이, 제인은 지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의 아이였습니다. 싸움에서 지는 법도 없었습니다.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고 싶어 안달이 난 제인은 국가의 비밀 프로젝트에 지원하여 좋은 성적을 거둡니다. 하지만 불의의 사고로 프로젝트에서 탈락하게 되고, 앞으로의 길을 걱정하며 살아갑니다. 그때, 한 남자를 만나게 됩니다. 그와 급격하게 사랑에 빠지고, 그의 아이를 갖습니다. 하지만 그는 잠깐 있다가 온다는 말을 남기고 영원히 사라지고, 제인은 홀로 아이를 낳습니다. 하지만 출산을 하면서 그녀의 몸이 이상함을 알게 된 병원 측은 난산을 일으키는 자궁을 떼어버리고, 몸속에 숨어있던 그의 2번째 성인 남성을 그녀에게 찾아줍니다. 어렵사리 아이는 낳았지만 갑작스럽게 남자가 된 제인은 그래도 아이만을 위해서 꿋꿋이 살아가려 합니다. 하지만 그녀가 낳은 아이를 누군가 훔쳐가게 되고, 아이까지 잃은 제인은 이름을 존으로 바꾸고 남자로서의 목소리, 화장실을 쓰는 법까지 배워가며 억척같이 살아내려 합니다. 자신보다 기구한 운명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 존, 어느날 찾아간 선술집에서 한 남자를 만납니다. 그리고 누가 더 불행한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자신의 과거를 그에게 털어놓습니다. 그는 과거로 돌아가면 무엇을 할 것이냐고 묻자, 자신을 떠난 남자를 죽일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자 그 남자는 존에게 시간여행을 시켜준다고 하고, 그 남자를 만나기 직전으로 돌려보내 줍니다. 존은 과거의 자신, 아직은 여자인 제인에게 다가가 못된 남자를 만나지 못하게 하려 하지만 결국 깨닫고 맙니다. 제인에게 접근해 임신을 시켰던 남자가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사실을 말이죠. 그리고 그 옛날 자신이 얼마나 아름답고 사랑스러웠는지에 대해서도 느껴버립니다. 그 당시 미래를 걱정하며 앞길이 막막했던 자신을 위해 그녀가 얼마나 완벽하고 아름다운지 이야기 해주지만 그것은 그저 과거의 자신을 지금의 자신에게 빠져들게 하는 말이 될 뿐이었습니다. 그녀와의 행복했던 시간이 지나고 원래의 시간으로 돌아가야 할 때가왔습니다. 그리고 존은 다시 그곳으로 갈수 없다는 것도, 이제부터 임무를 수여받아 일을 해야 한다는 사실도 알게 됩니다. 내가 나와 육체적 관계를 맺어 나를 낳았다? 인간이 늘 궁금해 하는 질문, “닭이 먼저야? 달걀이 먼저야?”를 풀어낸 영화가 아닌가 합니다.
패러독스의 끝은 어디?
<타임 패러독스>는 흥미로운 영화입니다. 하지만 조금은 엉성한 영화이기도 합니다. 그건 아마도 영화의 메인 스토리라인을 제인이 존이 되는 과정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사건이 있게 하기 위해서 나머지 SF적인 요소들이 추가 되어 붙어 있는 게 아는가 하는 생각이 드는 영화이기도 했습니다. 영화에서 자신의 사명을 깨달은 존은 자신의 사명을 달성하기 위해 임신한 제인, 자기 자신에게 돌아가지 않고 시간을 넘나들며 임무를 수행합니다. 그 임무란 많은 사람이 사망하는 사건을 미연에 방지하는 일인데, 사건이 일어나기 전으로 먼저 가서 사건의 촉발 요인을 없애거나, 범인을 사살 하거나, 조금 작은 희생으로 큰 희생을 막는 일을 합니다. 하지만 그 모든 일이 긴밀하게 구성되어 붙어있다는 느낌은 들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제인이 존이 동시에 존재 하는 것 외에도 그들을 지켜보고 그들을 이끄는 술집에서 만난 어떤 남자인 템포럴 요원이 바로 존의 노년후의 모습이었기 때문입니다. 즉 한 인물의 청년, 중년, 노년의 모습이 한 공간에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존이 템포럴이 되는 순간이 조금은 불친절 하게 묘사 되어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마지막 임무인 악당 중의 악당도 다름 아닌 템포럴이 더 나이를 먹은 때의 모습이었습니다. 반전을 너무 많이 노려서 이야기가 살짝 어지럽게 느껴지는데, 아마도 패러독스의 끝은 어딘지 관객에게 자랑스럽게 보여주고 싶었던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러닝 타임이 97분인데 제인이 존이 되는 데까지 절반을 썼고, 요원으로서의 임무를 알고, 성장하고, 또 다른 시간 파괴자 범인이 나타나서 문제를 일으키는 것, 등등을 설명하기 위해 절반을 썼습니다. 그렇게 영화는 두 파트로 나누어져있는데, 앞부분은 직접적 화자가 내레이션도 하고, 상당히 친절하고 정적으로 설명을 해줍니다. 그래서 앞부분이 지루하다는 사람도 있긴 합니다. 하지만 뒷부분은 임무를 수행하고, 그로 인해 사고를 당해 목소리를 잃고, 얼굴이 변하고, 최악의 범을 쫓아다니는 부분은 사건 중심으로 당하는 입장으로 빠르게 진행됩니다. 그래서일까요. 살짝 정신 사납습니다. 하지만 메인 스토리라인을 잡고 영화를 재차 삼차 보시면 꽤나 씹는 맛이 있는 안주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