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파묘, 무덤을 파서 시간을 연다.

by 아일야블로그 2024. 6. 17.
반응형

줄 초상을 부르는 묘 바람

이미 영면에 드신 조상님의 묘를 신성이 여기는 것은 한국 고유의 정서일 것입니다. 조상의 묘에는 여러 가지 금기가 있는데, 그중엔 관 자리에 물이 들면 안 되고, 물이 드는 곳인 줄 모르고 관이 들어갈 곳을 파 놓았다면 반드시 가묘를 세우고, 다른 자리에 묘를 서야 하며, 망자의 나이에 따라서 하관하는 모습을 보면 안 되는 나이가 있습니다. 보통 파묘를 하는 것은 이장하기 위해서인데, 이장은 보통 묘 바람”(묘지에 문제가 생겨, 후손들에게 나쁜 일이 연이어 일어나는 증상) 이라는 징조가 있어서라고 합니다. 또 예외적으로 돌아가신 조상이 직접 후손의 꿈자리에 나타나 묘 자리가 춥다거나, 얼굴에 나무뿌리가 얽혀 있다거나, 젖은 채로 나타나 울고 있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이런 꿈을 꾼 후손은 보통 무당을 찾아가 상담을 하고, 매장 터에 문제를 이유로 이장을 목적으로 파묘를 하게 됩니다. 물론 후손들이 더 이상 조상의 묘를 제대로 돌보지 않을 것을 걱정한 집안의 어른이 파묘를 결정하고 납골당에 조상의 뼈를 모시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영화 <파묘>에도 후손들의 건강에 이상이 생기고 있었습니다. 기이한 이야기를 듣고, 건강이 좋지 않거나, 목숨이 위태로워지는 순간에 직면한 것입니다. 이에 후손은 파묘를 결정합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미 불고 있는 묘 바람이 다시 더 거세가 불어버리죠. 조상귀신이 그나마 목숨을 부지 하고 있던 후손들을 죽여버린 것입니다. 이상합니다. 이장을 하지 않아도 묘 바람이 불고, 이장을 위해 파묘를 해도 묘 바람이 분다니. 어쩌면 영화 속 묘 바람은 우리가 기존에 알던 것과 다른 형식의 묘 바람 일지 모릅니다.

 

개장은 엄정한 제도 아래서 이뤄지는 행위, 착한 어린이는 따라하지 마세요.

영화의 시작은 미국에서 살고 있는 부유한 가족의 아이가 시름시름 앓고 있는데서 시작합니다. 그 가정에 태어나는 장자는 죽거나 환청에 시달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극중 무당인 화림은 그를 묘 바람이라고 이야기하며, 굿을 할 것을 제안합니다. 그리고 묘 바람이 불었으니, 이장을 할 목적으로 화림은 지관인 상덕과, 개관 후 다시 염을 할 장의사 영근을 찾아가갑니다. 하지만 묘지를 찾은 상덕은 기이한 묘지의 풍수에 당황하게 되고, 이 땅은 손대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화림은 대살굿으로 사악한 기운을 속여 이장 절차를 진행하자고 합니다. 하지만 파묘를 진행하는 도중 이상한 현상이 일어나고, 유족들은 개관을 원치 않고, 바로 화장을 할 것을 요구합니다. 사실 이 과정에서 상당히 많은 위법사항이 발생합니다. 사실 묘지는 관할 행정복지센터에 신고를 해야 합니다. 묘지는 개인의 소유가 아니라, 지방자치단체에서 관리하는 것이게 때문에, 개인의 소유지에서 묘를 만들었다고 해서 마음대로 파고 또 마음대로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개장(무덤을 옮겨 쓰는 행위)을 할 때도 개장신고(또는 개장허가)가 필요 합니다. 화장도 마찬가지입니다. 화장과 관련된 법이 존재하기 때문에 임의로 화장을 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영화에서도 계속 법을 저촉하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하는 대사들이 있습니다. 영화적 허용으로 이해하고 넘겨야합니다.

 

<파묘>에서 보여준 두 번의 묘 바람

영화 <파묘>에서는 묘를 열기 전에 묘 바람으로 추정되는 일이 있어왔습니다. 그래서 이장을 통해 묘 바람을 잠재우려합니다. 그래서 지관도 따라 붙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막상 묘지에 도착하니, 지관은 강한 의구심이 듭니다. 이런 악지 중에 악지에 묘를 쓴 이유가 무엇일까? 파묘후 관의 모양을 보고, 상덕은 이 무덤의 주인이 왕과 비등한 권력을 가졌던 인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역시 상덕은 이 문제를 이상하게 생각합니다. 분명 그때도 지관이 있었을 텐데, 어째서 이런 나쁜 땅에 묘를 서게 했을까 하는 의문 말입니다. 관을 꺼내고 묘 자리를 정리 하던 도중에 사람머리를 한 뱀을 죽이는 일이 생기고, 이야기는 급변하게 됩니다. 그 사이 관 뚜껑을 절대 열면 안 된다는 말을 어기고, 화장터의 직원이 관 뚜껑을 열게 되고, 관에서 엄청나게 험한 것이 나오게 됩니다. 놀라운 사실은 이 엄청나게 험한 것이 바로 조상 귀라는 사실입니다. 지금까지 묘 바람이라 겨여 졌던 것은 자신을 다른 곳으로 이장 해 달라는 조상의 강한 집념이 만들어낸 증상들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아이러니 한 것은 이장을 위해 관을 묘지에서 꺼냈는데, 조상 귀는 자신을 오랫동안 방치한 자손을 죽이러 미국까지 찾아갑니다. 이제 곧 원하는 대로 관을 옮겨 주는데도 말이죠. 이에 위협을 감지한 화림의 일행은 얼른 화장을 시키고, 마지막 어린 후손의 목숨은 지키고 이장 소동이 끝이 납니다. 나라를 팔아먹던 인물의 귀신이라 그런지 후손까지 팔아먹는 꼴이 참 가증스러웠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묘 바람이 붑니다. 묘지 이장을 돕던 일꾼이 사람머리를 한 뱀을 삽으로 내리쳐 죽임으로 일어나기 시작한 일입니다. 사실 이 땅엔 억지로 묘지를 옮겨진 누군가의 묘가 있었습니다. 즉 진짜 무덤의 주인이 따로 있었던 것입니다. 그 무덤의 비밀대한 힌트는 묘지 근처의 작은 암자에서 갖고 있습니다. “여우가 호랑이의 허리를 끊었다.” 여기서 말하는 여우는 기순애라는 일본에서 온 음양사인데, 기순애는 일본어인 키츠네(여우)를 한국식으로 발음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영화 속 기순애의 모습은 음양사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그의 존재는 사람인지 귀신인지 알 수 없는 인물로 나옵니다. 한국에서는 낯선 음양사. 이들은 요괴를 잡으며, 잡은 요괴를 멸하기도 하지만 그들을 식신으로 쓰기도 합니다. 식신을 포켓몬스터에서 나오는 포켓몬과 유사하다고 생각하시면 이해가 편하실 것 같습니다. 기순애는 묘지에 주술적인 의미(한국의 맥을 끊는다)는 의미로, 오래 전에 전사한 장군의 관을 태백산맥 한 자락에 매장했습니다. 철심의 모양을 형상화하기 위해 관을 세워서, 아주 깊게 말이죠. 그리고 그곳에 철심을 뽑기 위해 활동하는 사람들(일종의 독립투사, 반일단체)가 접근 하지 못하도록 고관대작의 관을 첩장하고, 군사를 동원해 묘지를 지켰던 것입니다.

두 번째 묘 바람은, 억지로 타국에 끌려와 철심 대신 땅에 박혀 있던 장군을 억누르고 있던 사람머리의 뱀(누레온나)이 죽으면서 불기 시작합니다. 신이 되게 해준다며 자신을 속였던 음양사에 대한 분노와 함께, 전쟁 영웅이었던 그는 무자비하게 살육을 시작합니다.

 

 묘지 속에 묻혀있던 과거가 현대로 타임 슬립하듯 드러나다.

묘지는 죽은 자의 영역이고, 과거에서 온 일종의 타임머신입니다. 오랫동안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잊힌 암흑의 영역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개장을 이유로 묘를 파내면서 과거의 시간이 현재에 살아있는 사람에게 갑자기 의미를 갖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드러난 시간은 한반도에 있었던 아픈 과거의 역사인 일제강점기와 그보다 더 이전에 있었던 임진왜란이었습니다. 묘를 파내니, 갑자기 항일영화과 되었고, 몬스터가 등장하는 영화가 돼 버려 혼란스럽다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사실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름이 모두 독립운동가의 이름과 같다는 사실을 아셨다면, 영화는 처음부터 항일 영화임을 눈치 채셨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사건의 시작 자체가 매국노의 무덤이었으니 더욱 그러 할 것입니다. 배우들의 완벽한 연기력으로 영화의 몰입도는 엄청났던 것 같은데, 막상 이야기의 맥락과 장르를 정리하기 위해선 숙고의 시간이 필요한 영화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특히 일본 무사의 등장은 모두를 당황시키기에 충분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유령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은어를 씹어 먹는 물리적인 존재가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영화는 조금 불친절한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분명 영화 내내 한국 무속에서 전해지는 여러 가지 모습들을 보여줬는데, 이들은 혼령과 관련된 영적인 것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일본에서 온 존재들은 다 물리적인 형체를 갖고 있었습니다. 누레온나도 사체가 남아있는 물리적인 존재였습니다. 이것이 일본 귀신과 한국 귀신의 차이인지 의구심을 들게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제쳐두고 영화는 천만 관객 동원을 넘겨버리는 기염을 토하게 됩니다. 이 불경기에 엄청난 성적을 거두었다고 생각됩니다. 혹시 영화를 아직 이해하기 힘들었다, 이상하다고 생각하셨던 분이 계시다면, 이 영화는 과거로부터 온 타임머신이다, 라고 생각하고 보시면 편하실 것 같습니다. 묘를 팠더니, 한반도에 있었던 일본과의 관계가 드러났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