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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인이라는 시민의 인생, 그리고 그의 후회
학창 시절 영화 관련 수업을 들었을 때, 당시 교수님께서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던 작품이 있습니다. 바로 1941년 미국에서 개봉한 영화 <시민 케인>입니다. 좀 더 한국스러운 의미를 찾아보자면 ‘케인이란 이름의 시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영화의 시작은 1940년, 신문왕 찰스 포스터 케인이 ‘로즈버드’라는 말을 남기고 사망하게 됩니다. 당대의 부와 명예를 모두 가졌다고 평가받는 사람 케인이 남긴 ‘로즈버드’가 과연 무엇인지 궁금했던 기자 톰슨은 그의 부고를 알리며, 그의 인생 깊은 곳을 취재하기 시작합니다. 별 볼일 없는 집안에서 태어났던 케인. 그는 우연한 기회로 쓸모없는 광산을 얻었고, 그곳에서 엄청난 금이 발견 되어 풍족한 삶을 살게 됩니다. 그리고 25살이 되어 신문사를 인수하고, 폭로성 기사들로 판매부수를 올립니다. 그렇게 부를 축적한 케인은 대통령의 조카와 결혼을 하게 됩니다. 정치계에 입문할 명예의 줄을 잡은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곧 미모의 여가수와 불륜을 저지르고, 그것이 세간에 알려져 낙선하게 됩니다. 불륜 사건으로 아내와는 이혼을 하게 되고, 둘 사이에 얻었던 아들은 교통사고로 사망하게 됩니다. 이후 케인은 상간녀였던 가수와 결혼하고, 그녀를 가수로 데뷔시켜 돈을 벌려 하지만 처참하게 실패하고 맙니다. 케인은 아내에게 다시 노래를 하라고 하지만 아내는 자살소동을 벌이고 노래를 하지 않게 됩니다. 그러던 중 그가 가진 신문사 중 하나가 문을 닫고, 그의 아내도 그를 버립니다. 그렇게 케인은 홀로 70을 맞이하고 ‘로즈버드’라는 말을 남기고 사망한 것입니다. 톰슨은 결국 케인이 말한 로즈버드(장미꽃 봉오리)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영화는 케인의 가치 없는 유품들을 정리하는 장면에서 끝이 납니다. 이때 화면에는 낡은 썰매가 불구덩이에 던져지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관객에게 시민 케인이 죽어가며 그리워했던 것이 무엇인지 알려줍니다. 그것은 별 볼일 없는 집안에서 태어나, 눈이 오면 타고 놀았던 눈 썰매. 광산을 발견하기 전 그가 자주 타고 놀았던 썰매 였던 것입니다. 결국 케인은 명예와 부를 쫓으며 어린 시절의 순수함과 행복을 잃어버린 삶을 후회하고 있었다는 걸 관객에게 알려주며 아련하게 끝을 맺습니다.
시민 케인이 왜 세계 100대 영화 중의 하나야?
전 세계에서 한해에 쏟아지는 영화만 하도 수백, 수천 편이 넘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또 영화 시장은 전쟁의 유무를 상관치 않고 계속해서 조금이라도 성장해왔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41년에 개봉한 영화가 꾸준히 세계 100대 영화 중의 한편으로 꼽히고, 1~10위안에 생존하는 것은 대단함을 넘어서 위대한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세계 100대 영화라는 타이틀에 끌려 <시민 케인>을 보신 분도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막상 영화를 보고 나면 이게 왜 100대 영화에 드는 것인가 의문을 갖는 분도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사실 세계 100대 영화가 되려면 관객의 사랑은 물론하고, 비평가의 사랑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영화 <시민 케인>은 영화가 개봉 했을 당시 사실 시민들에게 환영받지 못했습니다. 다소 어려운 영화라고 까지 생각 되었습니다. 또 영화의 감독인 오슬 웰즈가 롤모델로 했다는 인물이 실재로 살아 있었고, 그의 비위 행위에 대한 르포가 포함되었다 여겨져, 영화의 개봉이 여러 지역에서 제지당하기도 했습니다. 즉 대중과 만날 기회도 적었고, 정작 영화를 관람한 사람은 영화를 어려워했습니다. 그 말은 <시민 케인>을 세계 100대 영화로 만든 주된 장본인이 영화 평론가라는 것이 될 것입니다. 사실 <시민 케인>은 영화를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 볼 때, 또 영화를 영화 자체가 아닌 영화사적인 의미를 찾아보는 입장에서 본다면 훌륭한 영화입니다. 영화의 편집 기법, 촬영기법, 그리고 영화가 고전 영화에서 현대 영화로 넘어가는 관문으로서의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한 것도 분명 맞습니다. 하지만 저 같이 영화를 재미로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시대의 우상으로 여겨졌던 인물 케인이 사실은 나쁜 놈이었고, 그 또한 동심으로 돌아가고 싶은 욕망을 갖고 쓸쓸한 죽음을 맞이한 이야기로 보여졌습니다. 우상의 붕괴에 대한 이야기. 결국 현대에 널리고 널린 유명인이나 정치인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현대인에게 이 영화가 의미 있고, 재미있는 영화로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현대인에게 어려운 영화는 아닙니다. 그만큼 현대인이 봐도 어색하지 않다는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로즈버드에 대한 영화인가, 아니면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에 대한 영화인가?
영화 <시민 케인>만큼 영화 자체보다 영화 외적인 언급이 많은 영화도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25살 천재가 감독, 주연, 각본을 맡은 작품.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라는 인물을 롤모델로 만들어진 케인. 케인은 분명 허구의 인물이지만 그 인물이 실존하는 인물이라면 이 영화는 분명 현실 풍자영화과 될 것입니다. 하지만 영화는 시작부터 끝까지 ‘로즈버드’를 언급합니다. 골 때립니다. 로즈버드에 대한 영화라면 영화는 인생을 회고하며, 순수를 그리워하는 한 인물의 쓸쓸한 죽음에 대한 영화가 될 것이고, 허스트에대한 영화라면 그의 부의 축적 과정을 밝히는 르포성 영화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에 등장한 ‘로즈버드’는 허스트의 공격을 막기 위한 일종의 위장용 소재가 될 것입니다. 실제로 허스트의 변호사들이 <시민 케인>이 개봉하기 전 영화를 보고, 이 영화가 허스트에대한 영화가 맞다고 했다고 하니, 영화는 분명 허스트에대한 르포 영화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에 부도덕한 방법으로 부를 쌓은 사람이 한둘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도둑이 제 발 저린 상황이 아닐까 생각해보기도 합니다.